나의 글

천사의 등불

때로는 2003. 9. 9. 16:53

 

지난 일요일은
울 오빠 나이 마흔 다섯에 나은
우리 예쁜 은수의 백일 날이었다.

 

회사에서 야근을 하여 두시간도 못되게 잤지만,
백일에 벌써 뒤집기하는 손녀를 얼르고 계시는 어머니를 뵈니
천.주.께.감.사.
그 말이 무슨 주문처럼 입에서 자꾸 나왔다.

 

- 얘,얘, 난 저렇게 이쁜 아기 첨본다.
데레사 아주머니가 함박 웃음을 웃으며 나에게 말을 거셨다.

 

며칠전 어머니가 내게 전화로 부탁을 하셨었다.
백일이라 잔치를 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알았는지 데레사 아주머니가 꼭 참석하고 싶다고.
그러니 그 아주머니 불편하게 하지 말고 잘 어울려 드려라.

 

` 아휴, 그 아줌마는 가족도 아닌데 도대체 눈치가 없으시네.. `
내 그말에 어머니는 섭섭하셔서 전화를 뚝 끊어버리셨었다.

 

거의 탈렌트 촬영가는 모습마냥
오빠가 눈에 보이는대로 산 아이의 예쁜 공주과(科) 옷들을 들고
내리 쏟는 비속에서 벙긋거리며
우리 가족은 은수와 포토shop을 다녀왔다.

 

- 얘, 너희 엄마랑 내가 안지도 벌써 삼십년이다.

옷 갈아입으며 포즈를 취하느라 힘들었는지
새근새근 엎어져 잠자고 있는 은수의 등을 토닥이는데
데레사 아주머니가 내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시절
어머니가 이것저것 음식을 만들어 바리바리 싸 주시면
나는 버스 네 정류장의 거리를 걸어서
그 아주머니댁까지 갖다드리는 심부름을 했었다.

 

우리집 보다 훨씬 잘 살아서 일하는 사람도 있는데..
엄마의 호의를 당연하다 생각다 못해 거만해 보이기까지 하는 아줌마.
왜 우리 엄마는 저 아줌마에게 저렇게 굽신대실까.
은연중 나는 그 아주머니를 마땅치 않게 생각했었고,
성인이 된 지금도 그 감정이 마음에 남아있었다.

 

` 그러시네요. 음식 바리바리 싸들고 제가 심부름 다녔었는데,, `

- 그래,  그때 내가 너무 아파 아무것도 못 먹고 있을때 였는데,
너희 엄마가 나를 거의 먹여 살렸잖니.
 
` 데레사야, 너 그때 정말 못된 사람이었었다.

- 어머 내가 그랬수 언니?

 

` 내가 너희 집을 가보니 일하는 사람이 둘이나 있더구나.
근데, 너는 설탕을 벽장에 숨겨두고 생활하더라.
그 당시 설탕을 너희 집처럼 그렇게 흔하게 먹는 집도 없어서
하긴, 설탕을 훔쳐 퍼가는 사람도 있을 시대였지만,
너는 네 집에서 일하는 사람조차 믿지 못하는 성격이었었지.

- 응, 그랬었던 것 같네.. 호호

 

` 그리고, 너 아프다고 성당 어른들이 문병을 가면
음식 맛나게 대접하고는 그분들 집에서 다 벗어나기도 전에
먹고 난 음식 다 쓰레기통에 버렸다면서?
그 얘기 두고두고 어른들이 하셨었다. 못된 것이라고...
이제 생각하면 나도 나이들어 음식 먹을때 흘리고 하니깐
그때 네 심정이 이해는 가지만,
병 걸린 사람들도 아닌데,
네가 너무 깔끔떨어 유난스럽다고..

 

- 난, 언니가 해다 주는 음식이 젤 맛있었어.
굶고 있다가 거의 걸신 들린 사람처럼 언니 음식을 먹었지.
그때, 나는 언니도 나처럼 여유있게 사는 줄 알았어.
그래서 그렇게 언니에게 고맙게 생각도 안했었던 것 같아.

 

` 아니, 나 뿐만 아니라 너는 그때
어느 누구에게도 별로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어.
넌 참 못된 사람이었어.

 

어머니와 데레사 아주머니는 옛날 이야기를 하셨다.
잠든 은수옆에서 나도 스르르 잠이 들고 있었다.

 

- 언니, 내가 언니에 대해 정말 잊을 수 없는 게 뭔지 아슈?

눈이 무릎까지 내린 너무도 추운 한 겨울날 저녁이었어.
난 며칠째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시름시름 앓고 있었는데,
언니가 눈을 가득 맞고는 동태찌개를 해서 냄비에 들고 왔더라구..
난 반가우면서도 기가 막혔었지.


언니.. 어떻게 이런 날 오셨어요?  힘들텐데..

언니는 그 큰 눈을 꿈뻑꿈뻑 하면서 내게 말을 했지.

 

` 데레사야, 천사가 등불을 밝혀 주어서 올 수 있었지. `

 

난 그 이후로 언니에 대해 고마워하게된 것 같아.
언니도 알지만,
나 그때 누구에게 뭘 주는 것을 못하는 사람이었잖아.
언니에게 배워서
이제 나도 언니처럼, 사람에게 베풀면서 살게 된 것 같아.
나 우리 성당에서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잖아.

 

- 언니,,
아들도, 딸도, 며느리도, 언니 손녀도..
모든 것이 언니가 착하게 살아서 이렇게 복이 있는거야.

 

잠이 깼는지 꼬물꼬물 은수가 움직였다.
손가락 발가락이 마치 큰 숙녀처럼 가늘고 길다고
오빠가 자랑한 은수의 다섯개 손가락을 만지작 거리며
난 또 가슴이 뭉클했다.

 

아줌마를 우리집에서 주무시고 가게끔
어머니는 그 남편에게 전화를 해 허락을 대신 받고는
기다리고 있던 운전기사에게 집에 먼저가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그렇게
옛날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부자였던 그 시절 이야기를 하시면서
그 날 밤을 행복해 하셨을거다.

 

오빠는 일때문에 먼저 가고
은수와 올케 언니를 내 차로 데려다 주면서
나는 올케언니와 약속을 했다.

 

` 언니, 언니가 있어서 감사해요.
우리 모두 지금 행복하잖아요,
우리 지금처럼 항상 감사하면서 우리 살도록 해요.
그리고, 언제까지나 우리 착하게 살아요. `

 

우리 은수 백일떡을
수녀원 수녀님들께 제일 먼저 갖다 드리신 부모님.
나도 회사에 갖다가 다들 드시게 했다.

 

행복한..
그래서, 소중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