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따뜻한 차 한잔이 그리운 날

때로는 2004. 9. 13. 18:51


이제 비가 개었네요.

이번 비는 가을 비 치고는 정말 많이 왔지요?
지난 토요일 퇴근 무렵에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져 내리더군요.
차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거의 주차장이 되어있는 도로에서 마음을 비우고 빗소리만을 들으면서 있었지요.

새벽 출근길에는 그리도 쓸쓸했었는데...

들뜨던 모든 것들이 거짓없이 다 씻겨져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서일까요?
오히려.. 여유로와 보인다..  풍부해져 보인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저마저 편안히 실컷 비 구경을 했었지요.

여의도 근처쯤에서 친정 어머니가 전화를 주셨어요.
운전 조심하라고.. 그리고,, 은수가 왔다고...

은수가 누구냐구요?
제 오빠 딸이지요.
그애가 이제 16개월 되었는데 어찌도 그리 알토란 같고 똘똘한지요.
( ㅋㅋㅋ 저도 고슴도치 고모랍니다. )

아무리 피곤해도 그 애가  친정에 왔다고 하면 저는 바로 달려가지요.
방향을 돌려 여의도에서 거의 두시간을 걸려 돈암동 친정에 도착을 했네요.
어서어서 조카를 보고 싶다는 마음에 쏟아지는 빗속을 요리조리 헤치면서... ^^

주차장에 도착을 하니,  올케언니가 은수를 안고 저를 마중 나왔더군요.
올케언니는 11월이 둘째 예정일인데, 배가 벌써 많이 부르고 이번에는 아들이라고 하네요.
몸도 무거울텐데,, 집에 가면 볼텐데 은수를 이 고모에게 어서 보여주고 싶어 마중을 나온것이지요.
속이 깊고 마음 씀씀이가 고운 사람이지요.

까르르,,,, 웃으면서 제가 주차하는 동안에도 은수는 넓은 지하주차장을 뒤뚱뒤뚱 뛰어다녔어요.
얼마나 예쁜지,,,, 볼에다 뽀뽀를 쪽쪽쪽!!!  사정없이 아플정도로 해 주었지요.

친정 어머니가 해 주시는 맛있는 음식.
올케언니가 임산부라고 어머니는 제일 예쁘고 맛있게 생긴 것을 언니에게 주시네요.
은수도 어느새 제가 사준 키티 인형 숟가락으로 반 이상을 흘리면서도 혼자서 잘도 먹네요.
아우~ 아우~~ 우리 은수, 그렇게 맛있어요? 연신 저는 은수를 챙기지요.

우리 은수, 흔들말도 얼마나 잘 타는지,, 이제는 서서도 타지요.
음악만 나오면 몸을 흔들흔들,,
이제는 개울가에 올챙이 한마리, 그  춤도 앞다리가 쑤욱~ 뒷다리가 쑤욱~ 다리도 뻗으며 잘도 추지요. 
박수, 짝짝짝~~!!!
모자 쓰고 예쁘다고 칭찬하면, 바로 현관 거울로 제 모습 보러 가는 공주병도 있구요.
하느님께 감사하다고,,  가슴 저 밑에서부터 뭉클뭉클 뜨거운 감사가 올라오는 순간이지요.

친정어머니가 눈의 퇴화가 많이 진행되고 있으셔요.
노쇠 현상보다는 스트레스성으로,,, 신경을 많이 쓰시면 더욱 진행이 빠르다고 하네요.
이제 둘밖에 없는 금쪽같은 자식들에게 눈이 멀어 고생시킬까봐 어머니는 걱정을 하셔요.

마음이,, 많이 아프지요.
오랜 시집살이 하시고,,,, 막내아들 십년도 더 전에 먼저 가슴에 묻으시고,,
또 아버지 위암 말기이셔서 얼마나 고생을 하셨는지요..
그래도, 당신 병들어 자식들 걱정 시킬까봐 빠지지 않고 새벽에 동네한바퀴 도시는 분이시지요.

지난 주에는 제가 요가 비디오 테잎을 사 드렸어요.
혈액순환도 잘 되고,  운동 못가시는 눈비 오는 날에 운동도 되시라구요.
그 동안 감기로 몸이 편찮으셔서 한번도 안하셨다고 하시네요.

비디오를 틀어놓고 담요 위에서 어머니랑 둘이서 강사 설명대로 열심히 따라 해 보았지요.
어머니는 몇가지의 자세만으로도 벌써 땀을 흘리시며 힘들다고 하셨어요.
한~참을 숨을 고르며 비디오만 보시던 어머니가 제게 말씀하시네요.

` 얘, 나두 저렇게 꿀 바른 것처럼 입술이 반짝거리는 것 바르고 싶어. 나 저런 것 사주면 안되니? `
요가 시범을 보이던 원정혜 교수가 립글로즈를 바른 촉촉한 입술로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더군요.

` 얘, 난 왜 이러니? 나이가 칠십이면서,, 이런거 보면, 아직도 기지배같으니.. `

언제나 멋스럽고, 모든 것을 예쁘게 표현할 줄 아시는 어머니셨지요.
대학 다닐 때, 긴 생머리 풀어 학교를 가는 저를 앉혀놓고

온갖 꽃장식 끈으로 머리를 묶어주시던 어머니셨지요.
화장 하나 안하고 청바지만 입고 다니는 제게

비싼 아이샤도우랑 하얀 플레어 스커트를 사주신 어머니셨지요.

이제는
유행하는 립스틱, 좋다는 재생 화장품을 선물로 드리면 어린아이처럼 머리맡에 두고 주무시는 어머니,
예쁜 옷을 사드리면 하루에도 몇번을 입고 벗고를 하시며,,

성당에 입고 가실 날을 손꼽아 기다리시는 어머니.
어느새,, 어린아이 같이 제가 챙겨드려야 할 힘없는 모습의 어머니가 계시네요.

` 사드릴께요. 색깔별로 다 사 드릴께요. 그러니,, 어서어서,, 따라해 보세요. `

예전의 저는 가장 행복할 때,, 그 행복이 너무도 소중하여,, 그 행복이 달아날까 두려워 했었지요.
그것도 욕심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욕심 버리기, 비우기를 어렵게 익혔는데,,
그래서, 행복하면,, 행복하다, 감사하다, 그렇게만 마음 속을 채웠었는데,,

어머니가 점점 눈이 멀어지신다 생각을 하니,,
눈이 멀어지는 자신을 생각하며 슬퍼하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니,,
잊었던,, 버렸던 옛날의 그 욕심이 다시 생기는 것 같으니 어쩜 좋을까요.

으이구,, 내 딸!!
어머니가 저를 꼬옥 끌어 안으시네요.

지금 이렇게 행복하니,, 감사해야지요.
지금 이렇게 건강하시니,, 감사해야지요.
지금 이렇게 제 곁에 계시니 감사해야지요.

친구님들,,,,,
그냥,,,, 오늘은 친구님들께 수다를 떨게 되네요.
이해해 주시는거지요?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