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해전쯤 음악동호회에서 알게 되어 종종 소식을 주고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서운하게도 지금은 없어진
명동성당 토요일 성음악 미사에 가끔 함께 가서, ``순전히 음악만 듣는 거예요. `` 하며 앉아 있더 사람입니다.
시니컬한 성격에 맘에 안드는 꼴을 못참는 그가 언젠가 ``성당을 다닐까 말까하고 있어요. `` 해서
좀 놀란 적이 있습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음악 듣는 거 걷어치우고 천체망원경으로 별을 보는 취미로 돌아섰다고 알려왔습니다.
천체망원경 조립 이야기를 길게 덧붙여서 말이죠. 그 소식을 읽다가, ``세상에 어둡고 조용한 장소가
이렇게 고맙게 느껴지는 건 처음이예요.`` 하는 대목에 문득 떠오르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언젠가 미사
시작까지 시간이 남아 지하성당에 앉았을 때 그는, ``왜 성당 다니는 사람들은 죽은 듯이 조용한 시간과
장소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일까요? 답답하게 왜 초를 켜는 건가요?`` 하고 물었거든요.
그의 긴 글은 비 온 뒤에도 도시에서 별을 보기 힘든 이유를 사진을 곁들여 꼼꼼히 설명하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그게 주로 `빛공해` 때문이라며, 어둠을 잃어버린 공간은 생물 건강에도 해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의 글이 몇일이 지나도록 묵상의 끈이 되어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조용하고 어두운
지하성당에서 들은 그의 질문이 자꾸 생각났습니다. 그렇게 여러 날이 지나고서야 답장을 보냈습니다.
``별은 보는 취미, 그거 참 영혼을 들여다보는 노력과 닮았네요. 빛이 넘쳐나 별이 안 보인다는 게
상징적으로 느껴지는군요. 소리도 그렇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내 목소리가 높아지면 다른 사람 말이
들리지 않잖아요. 절대자를 만나는 길도 그런 것 아닐까요. 침묵하지 않으면 절대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고, 이성과 욕망의 불을 끈 채 어둠 속에 있지 않으면 창조의 빛이 보일 리 없어요.
태양보다 몇만 배 밝은 별이 수없이 많지만 우주는 어둡다죠. 은하들이 상상 못할 속도로 움직이지만
우주의 모든 공간은 침묵에 잠겨 있다고 하고요. 밝은 불빛에 덮여 잠들지 못하는 도시는 바로 그 때문에
온전히 깨어 있지도 못하는 장소입니다. 끝없는 소움에 묻혀 지내는 사람들은 온갖 소리를 듣지만,
바로 그 이유로 아무것에도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못하죠. 우리 인간과 절대자 사이도 그러런 것 아닐까요.
눈을 감아 빛을 잠시 물리고 귀를 막아 소리를 포기애야 비로소 그 모습이 드러나고 그 말쑴이
들리는 게 아닐까요.``
어느 연주자에게 무대 공포증을 어떻게 이겨내느냐고 물었습니다.
``조명을 받고 무대에 서서 내 소리를 무대 스피커로 들으면 괜찮아요. 관객이 안 보이고 누구의 소리도
안 들리니까 두려울 게 없어지죠.`` 불빛 한가운데 서면 내가 주인공이고 내 손안에 모든 게 있으니
두려울 것도, 겸속할 일도 없겠습니다. 밝은 곳, 시끄러운 곳에서 작은 이들이 보일 리 없고 낮은 목소리와
신음이 들릴 리 없습니다. 그러니 절대자에게 다가갈 겸손과 평온히 있을 리 없습니다.
절대자는 언제나 작은 이들 안에 있고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거신다니 말입니다.
침묵하고 몸을 감추는 것이 기도의 시작이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그 것이 바로 기도의 전부임을
깨닫기는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기도가, 말하기가 아니고 듣기이며 내 존재를 보아주시도록
드러내는 게 아니라 절대자가 그 모습을 드러내 주시도록 청하는 것임을 뒤늦게 실감합니다.
주님께서 찾아와 서시어, 아까처럼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부르셨다.
사무엘은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 하고 말하였다. (사무엘 상 3,10)
여상훈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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