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이미 굳어져 버린 것은 아닐까?

때로는 2003. 11. 26. 17:47
나이 사십이 넘으면 제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구요.

 

거울을 보면, 항상 표정이 살아있는 제가 그 안에 들어있었지요.

전화로 이야기를 하면, 항상 밝고 경쾌한 제 목소리가 들린다고 주변에서 말들을 하지요.

그럼, 저는 이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직업병이라고...

 

며칠전에 전철을 탈일이 있었는데, 자리가 없어 출입문을 마주보며 서있었지요.

어스름이 내려앉는 저녁이었는데, 창을 통해 흐릿하게 보이던 제 모습이

차츰 어두워지는 창밖을 배경으로 점점 확연하게 눈에 들어오게 되더군요.

 

무표정!

뿌연 형광 불빛 아래로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무표정한 제모습이

저와 눈을 딱 마주치더군요.

놀랬습니다.

 

` 어머! 아드님이신가봐요. 귀엽네요. `

어제 신입사원이 면접보러와서는 제 책상에 있는 조카 사진을 보고 한 말이예요.

우리 조카 백일에 찍은 사진인데,, 빨간 운동모자를 거꾸로 쓰고 웃는 사진이지요.

` 넘 하네,, 여자아이인데.. `

면접보러와서 아부성 발언(?)을 한 것이 오히려 실례가 될까봐  그 직원 얼굴이 홍당무가 되더군요.

 

참, 신기하지요.

통상, 여자에게 남자 옷을 입혀도 그 표정이나 폼새는 여자같아 보이지요.

남자에게 여자 옷을 입혀도 마찬가지이구요.

여자는 어딘가 여자같고 남자는 어딘가 남자 같다는 이야기지요.

 

그런데, 백일날에 찍은 우리 조카 사진을 보면 그렇지가 않네요.

계집아이 옷을 입히고 꽃모자를 씌워 찍은 사진은 영락없는 계집아이이지요.

반바지에 맨투맨 티를 입혀 운동모자를 눌러씌운 사진은 또 영락없는 사내아이네요.

 

모자를 손으로 가려보면 그 표정, 그 웃음은 그아이 것으로 똑 같아요.

그런데 옷따라 성별이 달라보이네요.

아마도 어린아이는 아직  교육되어지거나 길들여지지 않아

이미 짜맞추어진 표정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었지요.

 

누가 그러더군요.

어두운 창에 비친 자기 얼굴의 나이는 속일 수 없는 것이라구요.

거울속의 나는 꾸며지고 연출되어진 모습이기때문에 나이를 속일 수가 있지만,

어둠속 창에 비친 모습은 아무리 숨기려해도 모든것이 다 들어나 감출수가 없다구요.

 

그 날의 제 모습이 그 이야기와 틀림이 없었지요.

 

나이에 맞게 늘어진 피부

생기 하나 없는 미소 잃은 입술

더 이상의 감동은 없는 듯한 무표정한 시선

세파를 짐작하게 하는 까뿌수수 피곤한 기색

 

듯 들여다 보게 된 제 나이의 거짓없는 모습에 한참을 생각에 잠겨야 했어요.

제 얼굴에 제가 책임져야 한다는데,,

너무도 시체같이 빛바랜 제 모습이 마음에 안들었어요.

 

이미, 너무 늦은 것은 아니겟지요?

설마, 이제는 어떤 것으로 연출을 해도 변하지 않게 굳어버린 것은 아니겠지요?

노력하면, 무의식의 속에서도 눈에는 생기가 돌고 입가에는 미소가 드리워질 수도 있겠지요?

 

모든 것을 흡수할 수 있는 갓난 어린아이 같을 수는 없겠지만,

이미 너무 지나쳐 고정되어진 제 모습이 아닌,

밀랍인형처럼 굳어져 다시는 바꿀 수 없는 그런 제가 아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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