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또 다시 시작이다

때로는 2004. 9. 18. 18:54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차암 우습다.

먼거리 출근을 하려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할 때는
떨어버려야 할 잠자리가 어찌나 그리 꿀맛같던지...
눈을 뜨고도 한참을 뒤척이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지를 못했었다.

그런데  어제, 오늘..
이른 새벽 슬그머니 일어나 어정어정 걸으며
매끈하면서 차가운 원목의 거실바닥이 맨발에 닿는 감촉을 가만히 느껴보게 된다.

사람의 마음 속 여유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일까?

어서 적응하여 멋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며 몰아대던 숨가빴던 시간들.
이제는 어느새 익숙해진 내 신체의 리듬따라 마음 속 편안함을 느끼는 넉넉한 이 시간.

그제 아침, 출근하여 업무 스케쥴을 훑고 있는데 기획 팀장님이 전화를 주셨다.
어찌저찌 계획하는 회사의 중요한 정책에...이런 저런 타당한 사유로,,
하여간 그래서 내가 이번에 본부 영업총괄팀으로 발령이 난단다.

인사 발령지 맨끝에 내 이름이 있었다.

친정어머니께 전화를 드리니,, 울먹울먹하셨다.
해도 안뜬 새벽에 먼거리 운전하며 달리는 딸년을 생각하며 매일매일 가슴이 아프셨다고..
이제 새벽마다 나를 깨워 주시느라 잠을 설치셨던 친정아버지의 수고로움도 끝낼 수 있겠다.

잘됐네~! 남편은 히죽이 웃었다.
올케언니가 축하한다고 전화를 주고,,
입성을 축하한다고 여기저기서 전화들을 주었다.

인천 국제 공항에서 근무한지 만 9개월.

잘 지낼수 있을까 염려하는 내 자신과 지인들에게 씩씩하고 든든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미처 적응하지도 못하는 컨디션을 우격다짐으로 맞춰가며 뛰어다니다가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와서는 너무도 피곤해 잠을 못이루었던 시간들.

그런데,, 이제와 생각하니...머무른 기간이 너무  짧아
내 갖고 있는 역랑껏, 소신껏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미처 보이지 못한 것 같아
그 곳에서 필요로 했던 내 자리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떠나는 것 같아
남아있는 동료, 직원들에게 너무도 미안하고 아쉽다.

매장을 둘러보러 나가니 직원들이 다가와 섭섭하다며 내 손을 잡는다.
정말 따뜻하고 고맙다.

떠나야하는 내게 여러 곳에서 아쉬움을 만들어준다.

자주 이용하던 식당 지배인들의 세심한 배려,
오고가며 마주치던 공항 세관원, 경찰대들의 정다운 인사.
공항 경비, 청소하시는 분들과의 따뜻한 목례까지..

새삼,,, 정들은 사람이,, 고마운 시선들이 너무도 많다.

집에 돌아와보니 직원들이 내 홈피 방명록에 글들을 올려놓았다.
섭섭하다고.. 건강하라고.. 여전히 멋진 모습을 기대한다고..
하나하나 답글을 달아주는 마음이 어쩐지 마냥 흐믓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파아란 하늘을 공항 유리벽으로 내다 보던 그 충만한 행복했던 시간들...
너무도 안타깝고 소중하다.

많이 그리울 것 같다.

새로이 맡은 업무는 평소 욕심내어 해 보고 싶던  업무영역이다.
중요하지만 아직은 회사에서 그 정립이 덜 되어 더욱 내 노력이 필요한 곳이기도 하다.
회사에서의 기대와 내 욕심에 부응하려면 아마 밤새도록 공부도 해야할 것이다.
무궁무진한 업무적 기대에 사실 가슴이 벅차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자꾸자꾸 아쉽고 섭섭하다.
한없이 바라보며 동화되던
하늘, 바다, 살아 숨쉬던 뻘,,,
하루에도 몇번이나 볼 수 있었던 석양 빛 넉넉한 풍경..
이제는 더이상 그런 풍부한 아름다움 곁에 있을 수 없을 것 같아서..

다음 주 부터는
제일 복잡한 도심, 명동의 높다란 건물에서 부지런히 땀흘리는 내가 있을 것이다.

이제 남들과 똑같은 주 5일, 정시 출퇴근 근무가 되었으니..
그 나름으로 또 내 삶의 행복을 엮어야 하리라..

성당도 열심히 나가야지.
학원도 몇개 끊어 열심히 공부해야지.
남편과 주말을 깨볶으며 보내야지.

그리고,, 푸른 하늘을 자주 보도록 노력을 해야지.

또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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