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다시 봄날이다

때로는 2004. 4. 23. 18:45

 

지난 일요일 새벽의 일이다.
자꾸 자꾸 파리 몇마리가 내 귓가에서 잉잉 날아다니는데
머리를 흔들고 손을 휘저어 털어내도 간질거리며 내 귓전에서 여간 성가신게 아니다.
아휴~~ 도대체가 왜 이러는걸까? 도저히 못견뎌 눈을 떠보니 그것은 꿈!

바로 옆을 보니,
남편이 내 왼쪽귓가에 바짝 입을 대고
드르렁 드르렁 신나게 코를 골며 세상모르게 자고 있었다.
푸아푸아 바람까지 품어대며...

남편의 코고는 소리가 그리도 성가셨을까?

생각해 보면 웃음이 난다.
아침에 눈을 뜨면 미혼때 습관대로 등돌리고 저혼자 잠을 잔 서로에게 섭섭해
돌아누운채 아침에 잠을 깨는 사람이 벌금을 내기로 약속까지 하고
불편해도 마주 껴안은 채 잠을 청했던 신혼의 시절.

꿈속에서 늪엔가 어딘가에 빠졌는데
벗어나려 해도 이상하게 머리만 안빠져서 머리가 죄어오고.. 아프고..
눈을 떠보니, 남편이 베개삼아 내 머리를 베고 자고 있더라는 어이없는.., 쯧!!

세상에나 그 큰돌(?)이 양껏 누르고 자고 있었으니 얼마나 머리가 저렸을까?
코고는 소리, 잠꼬대 소리가 내 그것만큼이나 익숙해서 편안했던 시절도 있었다.

일년을 약속하고 내려갔던 남편과의 주말부부 생활이 이제 일년 하고도 육개월.
한동안은 그런 익숙한 것들이 없는 혼자드는 잠자리가 허전해 밤새 뒤척이기도 했었다.
그런데, 어느새 남편의 코고는 소리가 낯설어 날파리의 앵앵거리는 성가심으로 들렸다니..
흉을 보려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하니, 자기가 그리 심하게 코를 골았냐며 히죽 웃는다.

` 아줌마 이제 큰일 나셨네요. `
` ? `
` 이제 매일 매일 생기는 빨래거리랑 다림질이랑,, 아줌마 일이 새삼 많아졌네요.`

남편이 5월1일자로 발령이 나서 아예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드디어 주말부부가 끝난다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희소식이다.
걱정하는 척 놀리는 남편에게 나도 히죽이 웃어주며 대답했다.

` 아저씨가 도와주시면 되지요. 근데, 아저씨도 새삼 고생이 만만치 않겠네요 `
` 그건 또 왜? `
` 그동안 고삐 풀려서 자알 노셨는데,
  들어올 시간이 훨씬 넘었는데 어디서 뭐하는거냐?
  늦으면 늦는다구 전화는 왜 못하냐?  쏟아지는 바가지가 새삼 괴로우실텐데요... `

` 흠...... 우리..... 적당히...하고....살자.... ` ^^

이제 주어졌던 업무가 다 완료가 되었으니 슬슬 올라올 때가 된것 같다고..
남편이 몇번을 이야기 할 때마다 어서어서 그날이 오길 빌었었다.
남편이 함께 일할 직원들을 선별해 한명한명 발령으로 서울에 올릴때마다
내 설레임도 커져갔었다.

` 나, 다 다음 주에 아주 올라간다. 발령 결정났다.`
조용한 회사 사무실에서 남편의 그 전화를 받은 나는
주의도 의식하지 못하고 얏호~ 환호성을 올렸었다.

누나누나, 술마셨는데,, 이 시간에 전화기를 보니 누나 생각만 나더라.
새벽 두시넘어 술에 취해 헤롱대며 전화한 후배에게
짜식,,, 울 아찌 없다고 아주 만만히 보네.
만만해서가 아니라 누나를 너무 좋아해서 생각이 난거라고 연신 변명하던 녀석이
울 아찌 담주에 올라온다. 아구... 신나라.. 내 그말에
어? 그럼 이제 앞으로 늦게 전화하는거 조심해야겠네.. 금새 꼬리를 내린다.

지나가다 보니 그냥 생각이 났다며 뜬금없이 불쑥 집앞까지 찾아와 
때 아닌 한밤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 하던 선배가
울 남편 담주에 올라온다.. 내 그말에
바람피다 들킨 남자처럼 화들짝 놀라던 그 모습이라니..

뭐, 이상한 행동이나 특별한 행동을 한 적은 없지만,
어쨋든 갑자기...좋은 시절 다 갔다는....
웬지...  아쉬움이 한편에 드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언니야,, 아찌 오시기 전에 신나게 인라인 로드나 나갔다 오자.
얘 얘, 너네 남편 오기전에 어디 박(泊)으로 여행이나 갔다 오자.
어쩌구 저쩌구.. 주변에서 더 성화들이다.

봄. 날. 은. 갔. 다. 고....

일요일 오후에는 남편과 세일 마지막 날이라는 백화점 쇼핑을 갔었다.
새로운 곳에서의 업무를 시작하는 남편을 위해
요즈음 유행하고 있다는 줄무늬 검은색 양복에 연분홍 와이셔츠,
고르고 골라 굵은 푸른색 스트라이프가 있는 연분홍 넥타이를 사며
첫입학을 앞둔 코흘리개들 마냥 점점 흥겨워지는 우리부부가 거기 있었다.

내겐 베이지색 리본이 달린 흰 모자와
긴줄에 달랑거리는 귀걸이를  남편이 선물로 사 주었다.

기분이... 흐흥~~ ♬
역시 남편이 서울에 온다니 너무 좋다.

이제 나두 젊은 부부들처럼 남편 팔베개하고 찜질방을 뒹굴어야지.
이제 나두 한가로운 부부들처럼 남편 손잡고 양재천 산책길을 조깅다녀야지.

남편이 좋아하는 콩나물도 쑤욱쑤욱 길러 먹고
눌은밥이라도 끓여 아침식사를 꼬바꼬박 챙겨주며
가끔은 한밤에 와인도 한잔씩 해야지..

울산에서 올려보낸 남편의 짐들을 하나하나 풀어 제자리에 정리를 하며
이제 다시 둘이 사는 우리집, 어느새 다시 꽉찬 우리집을 느낀다.

이제 곧,
곁에 있어 하나보다 더 익숙하고 편안한 우리 부부가 되겠지.

다시,,, 봄날이다...

 


 

그린향 핫..뚤 ..셋..넷... 날짜를 세어보니 5월도 며칠 안 남았네여~^^ 얼마나 좋으실까요? 작은 자루 넉넉히 준비할께요~ 참깨를....^^ 가슴이 꽉 차도록 ..좋은 글에 그저 덩달아 기쁨이 감돕니다~ 그리고님? 두분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꼬리말에 코멘트 04.04.23
여울목 다시 둘이 사는 우리집..^^ 다시 시작되는 깨소금 신혼생활 ^^ 곁에 있어 하나보다 더 익숙하고 편안한 그리고님의 집에 다시 봄날이 맞는것 같습니다. 이미지 너무 예뻐요..^^ 꼬리말에 코멘트 04.04.23
다래 많이 축하드려요..모름지기 부부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한지붕밑에서 살아야 된다..주장하는 다래랍니다.더욱더 행복하세요....그럼 새벽을 깨우시는 친정부모님의 수고가 줄어드시는 겁니까..옆에계신 분이 깨워주시니?? 꼬리말에 코멘트 04.04.23
duna 부부가 함께 살면서 불편한 날들보다 좋은날이 더많지요~~ 밥과 반찬준비... 빨래거리...다림질이랑...모두다 행복한 걱정거리들이지요 현명하게 공동체를 성공적으로 이끌어가는 젊은 부부상 ....그리고님!! 사는모습 정말 예쁩니다 ^^* 꼬리말에 코멘트 04.04.23
백제의미소 저도 몇 년 동안 주말부부를 했던 적이 있었지요. 그나름대로 재미도 힘듬도 행복도...좋은 경험이었어요. 다시 봄날을 맞으신 ~~ ^^ 따뜻한 봄날 속의 그리고님... 예쁘고 화사한, 향기도 좋은 봄 꽃 피어나는 얘기 ...두 분과 함께, 또 행복해질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꼬리말에 코멘트 04.04.23
그리고 그린향님, 여울목님, 다래님, duna님, 백제의 미소님... 이리 축하해 주시니 감사드려요. 그동안 멀리서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하고 안타까워하기만 한적도 많았는데,, 이제는 오히려 토닥토닥, 이 수필방에 남편 흉에 하소연 할 것이 더 많을지도 모르지요. ㅎㅎㅎ 앞으로도 자알 부탁드려요. 수정 삭제 꼬리말에 코멘트 04.04.24
바람돌이 화요일날 장사 나와서 토요일날 돌아가는 장돌뱅이랍니다. 오늘은 집으로 돌아가는 설레임으로 일찍 일어났습니다. 금요일쯤 되면 그녀1의 구속이 그립다가도 화요일이 시작되면 또 정처없는 자유로 설레입니다. 참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나가면 돌아가고 싶고 또 떠나고... 축하와 절제를 드릴테니 접수해 주실래요? 꼬리말에 코멘트 04.04.24
가람 맑고 깔끔한 글을 읽었습니다. 부디 부디 님의 글이 마음 판에 새겨져 서로를 위로하며 서로 참아주는 아내와 남편이 오래 오래 되어 주시기를... 꼬리말에 코멘트 04.04.24
송헌 허 그참 재미나다. 우째 이리 잼나게 글을 올리는 거유? 행복하시구려.우리 모두 부러워할 터이니 꼬리말에 코멘트 04.04.25
그리고 축하와 절제라... 바람돌이님, 그 말씀을 들으니 주례를 부탁드리러 신부님을 찾아뵙던 예비부부시절이 생각이 나네요. 무엇이든 다 품을 수 있을 것 같던 그 희망 가득찼던 시절. 가람님께서도 송헌님께서도 그 화사했던 시절이 그립지 않으신가요? 여러분들 말씀 깊이 새겨둘께요. 감사합니다. 수정 삭제 꼬리말에 코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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