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희 할머니는
삼대독자 가난뱅이 아들에게 시집온 외며느리인 내게
왜 그렇게 맘 편히 안해주시고 심술을 부리셨는지... `
오랫만에 친정에 들러 배불리 밥 얻어먹고
어머니 무릎베고 누워 빈둥대는 제게
뜬금없이 어머니가 말씀하십니다.
어릴때는 잘 몰랐지만,
자라면서 제 마음에 큰 근심으로 남는 것이 있었다면
저희 친정할머님과 어머니의 고부간 갈등이었습니다.
두분다 그렇게나 정이 많고 사랑이 많으신 분이라서
할머님은 소리없이 모든 것을 어머니에 맞추시고
어머니는 최선을 다해 가장 좋은 것으로 할머님을 모셨습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아주 사이가 좋으신 분들로 보였지만,
맘속으로는 끝내 무언가 풀수 없는 여인네들의 응어리로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용서하지 않는 사이라는 것을
중학생때부터 눈치채고는 가슴아파 한적도 많았습니다.
그러다 87세로 할머님이 노환으로 돌아가시게 되었을때
정성으로 수발을 드는 어머니를 보시고는
할머님이 비로서 아무 의심없이
마치 어린아이같은 마음으로
온전히 어머니에게 의지하게 되셨고,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편안하게 떠나셨습니다.
그 후 어머니는 가끔 아주 가끔
홀시어머니셨던 할머님의 고된 시집살이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했던 어머니의 일을
하소연삼아 또는 스스로를 대견해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도 할머님 이야기로 하소연을 하시고 싶나보다 생각했습니다.
군에 간 내 소중한 아들이 애써 얻어온 귀한 진돗개를
아무렇게나 내놓아 하루만에 잃어버리게 했던 그 무심한 시어머니,
고생하는 아들에게 미안함, 그 아까운 것 잃어버린 속상함...
애써 가꾼 화단에 똥 누인다고 멍멍이 풀어놔서
꽃 다 짓밟혀 한해봄 내내 고생이 도로아미타불 되게 한 심술...
이제 어머니가 척 한 말씀 하시면
맘속으로 줄줄줄 외우게 될 내용들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뒷얘기가 이상합니다.
` 얘야!! 그때 그렇게 속상하고 화가 났어도 말이다..
그 분이 내 어머니, 내 어머니니깐
내가 그렇게 그분에게 화를 내고 표시를 내면 안되는 것이었어.
나도 나이든 요즘에 가만히 생각해 보니깐,
정말로 내가 내 시어머니에게 잘 못한 것이 너무 많더구나.
아무리 억울하더라도, 일이 아무리 망가졌더라도
내 부모, 내 어머니이니까 내가 그러면 안되는 것이었어. `
` 그래서 며칠전에는 성당에 가서 고해 성사를 보았단다.
내가 부모님께 잘 못한 것이 너무 많아 마음에 담아둘수가 없어서.
하느님께 모든 것 다아 고백을 하고 용서를 빌었단다.`
` 내가 이제 칠십이 다 되어서야 철이드나 부다. `
저는 슬그머니 일어나 앉아 어머니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 얘야, 너 시부모님에게 못되게 굴지 말아라. `
엄마, 저 시부모님께 못되게 안해요.
` 아니, 지금 말고,
나중에 나중에 시부모님이 지금보다 더 늙으셔서
아무힘 없이 네게 의지하게 될때,
혹시 네게 억울한 소리를 하거나 너를 속상하게 하여도
네 부모니깐 네가 다 그냥 받아야 한다. `
` 도대체 왜 그러세요? 이렇게 말하는 대신
어머님, 그렇게 하는게 더 좋으세요? 이렇게 말해라. `
` 저보고 어쩌란 말이세요? 이렇게 말하는 대신
아버님, 제가 이렇게 하는 게 더 좋으세요? 이렇게 말해라 `
` 얘야, 착하게 살아야 한다. `
흘긋 어머니를 보니 양쪽 눈가가 빨개지셨습니다.
아마도 할머님을 생각하시나 봅니다.
이제 두분이 진정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그래서 화해하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네 엄마, 엄마가 가르치시는대로 착하게 시부모님 모실께요.
약속할께요. 엄마도 이제 마음을 푸세요.`
'나의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로 그것이야 (0) | 2003.07.08 |
---|---|
내 나이가 그럴 나이?? (0) | 2003.07.07 |
예쁜 우리집 어린 올케언니 (0) | 2003.05.13 |
그리움 (0) | 2003.04.24 |
아무렇게나 꽃꽂이 (0) | 2003.04.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