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내일 또 내일

때로는 2004. 3. 25. 19:30
 

휴일인 오늘, 오전중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제법 바쁜 일정이었다.
남편이 생일선물로 사준 남편 이름으로 되어있는 내 핸드폰을 나의 이름으로 변경 하기위해
동회가서 인감떼고, 이동통신 대리점 가서 명의 변경하고..
조금씩 조금씩 아껴두었던 비자금을 통장에서 꺼내어 어찌하면 좋은지 은행가서 상담도 하고,
또 내 갖고 있는 차종이 리콜이 되었다니 서비스 센터에 가서 확인하고 한참을 기다리고..

찌뿌드드한 하늘에 기분이라도 풀어볼까나..
왁스까지 넣어서 깨끗하게 세차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남아있는 휴일오후를 무엇을 하면서 보낼까.. 흠흠 콧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런데,,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노래...

스쳐가는 은빛 사연들이 내 마음에 가득차고...
풀나무에 맺힌 이슬처럼 외로움이 젖어드네...

김수철의 ` 내일 또 내일` 이라는 노래였다.

옛날, 아주 그 옛날,
처음으로 그 아이의 집에 인사를 드리러 갔었던 날이 있었다.

그 아이의 어머님과 누나에게 인사를 드리고,
그 아이의 방으로 안내를 받아 가는데 나는 그 아이의 큰형과 마주치게 되었다.

집안에서 인물이며 실력이며 너무도 잘 난 형이라, 그래서 잘난척까지 하는 형이라
그 아이는 형을 별로 따르지 않았고, 형도 그 아이를 탐탁해 하지 않는다고 했었던가.

짧은 단발머리에 하얀 브라우스, 파란 주름치마의 교복을 입고
두손을 모아 공손히 머리숙여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내게
그 형은 급히 자신의 방으로 가서 무엇을 들고 나왔었다.

심심할 텐데, 음악이나 들어요.
당시 최신이었던 더블데크 카세트 플레이어.
와~아, 쌀쌀맞기 한이 없는 큰형이 웬일이냐, 평상시엔 손도 못대게 하면서..
그 아이는 큰 형이 못보는 데서 삐죽대며 별일이라 흉을 보았었다.

그 때, 거기서 흘러나온 노래가 바로
김수철의 ` 내일 또 내일` 이라는 노래였다.

한참 감수성이 풍부한 꿈꾸는 여고생에게
그 노래는 가슴이 짜르르~ 내려앉게 하는 그 무엇이 있었다.
그 후 오랫동안 나는 그 노래를 좋아했었던 것 같다.

우리 누나가 너를 떠올리면 깨끗하고 하얗다는 느낌 밖에 생각이 안난대.
네가 입었던 하얀 교복 때문인가봐.
그 애는 나중에 내게 그렇게 말을 해주었었다.

그런데 오늘.
달아오를 듯한 따뜻한 봄 햇살속에서 그 노래를 문득 듣는 순간.

그 한없이 맑고 깨끗한 예쁜 그 시절.
그 한없이 여리고 곱던 아름다운 그 시절.

이제 다시는 돌아갈래야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
이제 다시는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그 모습.

웬지 한 순간 세월을 건너뛰어 늙어버린 듯한
서운함과 그리움이 뒤섞여 묘한 감정이 되어버린 내가 되었다.

흘러 흘러 세월가면 무엇이 될까.
멀고도 먼 인생길을 나 홀로 가야하나.
한 송이 꽃이 될까..

내일 또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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