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

가위

때로는 2006. 2. 2. 20:23

남편이 설날연휴 마지막 날 슬로바키아로 출장을 갔다.

설 명절 이틀을 시댁에서 열심히 일하고,, 친정으로 시누님댁으로,,

그리고는 인천공항으로 남편을 왕복 4시간 걸려 데려다주고 오니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마침 남편도 없고 1월 마지막날 월차로 회사를 쉬기에 월욜 저녁에 찜질방을 갔다.

뜨거운 물에 몸을 푸욱 담그면 피곤이 풀리려니.. 그런데, 별 효과가 없었다.

게다가 엄마는 그런 마흔넘은 딸년이 청승맞아 보였는지 밤새 전화를 하셨다.

` 네가 부모가 없니, 남편이 없니.  왜 찜질방에서 혼자 밤을 새니? `

그렇게 걱정에 걱정을 하셔서 할 수 없이 남편없는 일주일을 친정에서 보내기로 결정을 했다.

 

잔뜩 출근복이며 화장품이며,, 한 가방을 싸가며 유난을 떨긴 했지만,,

친정에서 지내니 편하고 좋긴 좋다.

 

출근 거리가 한시간에서 삼십분으로 줄은 것은 물론,

기름값 아깝다고 웬만하면 걸어다니시는 아버지가

마을버스 두 정류장 거리의 전철역까지 그 새벽에 데려다 주시고

퇴근시간에는  시간맞추어 마중을 나오셨다.

또한 집에 들어가면 맛있는 냄새가 폴폴 풍기는 저녁을 준비하며 반기시는 엄마에...

옆에서 조잘조잘(?) 이야기를 즐기시는 엄마의 손을 잡고 잠드는 것은

정말 오랫만에 느끼는 행복이었다.

 

명절 후유증으로 입안에 혓바늘이 돋고  늘어나는 회사에서의 책임에 힘도 들었지만

그래서 요즘 귀가하는 발걸음은 아주 가벼웠었다.

 

그런데,,, 어제 드뎌 잠을 자다 가위를 눌렸다.

 

그놈의 ` 전설의 고향` 이 문제였다.

고전극을 좋아하시는 엄마가 밤늦게 재방영되는 그 프로를 보시는데,,

옛날 드라마라서 그런가 화장들이 진하고 인상들이 그렇게 강할 수가 없었다.

그냥 얼굴들만 봐도 웬지 무섭다.

저래서 억울하게 죽어 한이 맺혀 귀신이 되나부다.

저러다 무슨 일을 당해 귀신이 되나부다..

그렇게,, 겁이 많은 나는 귀신이 나올까봐  채널을 돌리자고 보채고,,

엄마는 여름도 아니니 귀신 나오는 내용은 아니라고 걱정말라시고,,,

 

결국 드라마에서는 귀신이 안나왔는데,,

꿈에서 그 놈의 귀신을 보았다.

검은 머리를 길게 풀어헤친 하얀 소복의 여자가 개울가에서 앉아있는 것이었다.

 

너무 무서워..

어버버,, 어버버,, 귀신이 나타났어요. 도와주세요.

말도 제대로 안나와 그렇게 소리치며 혼비백산, 나는 계곡을 뛰어나왔다.

 

지난 언제였던가,  

나는 우리집에서 혼자 자다 가위를 눌렸었는데,,

아무리 몸부림을 치고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한참만에 혼자서 잠이 깬적이 있었다.

진땀을 흘리며 겨우겨우 눈을 떠 추욱 늘어진채 맞은 그 쓸슬한 혼자만의 새벽은...

너무너무 싫은,, 가위 눌린 것보다도 더 기분 나쁜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느낌을 내가 이번 꿈에서 기억을 했는지..

내가 도와주세요... 하고 골짜기를 뛰어나오니

꿈속의 누군가가  옆에서 ` 에구,, 가엽기도 하지 ` 그러는 것이었다.

 

순간,,

- 그래,, 날 깨워줄 사람이 아무도 없구나... -

그렇게 마음이 슬퍼지며 기운이 빠지려하는데,,

어디선가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 안나야,, 안나야,, 에구,, 얘가 가위가 눌리네..`

엄마가 날 흔들어 깨우시더니 힘껏 안아주셨다.

더 이상 몸부림치지도,, 애원하지도 않고 나는 가위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야위신 엄마의 품이 얼마나  따뜻하고 감사하던지..

 

` 아!!  엄마가 옆에 계셔서 너무 좋아요. `

나는 그 슬폈던 새벽을 떠올리며 진심으로 엄마께 말했다.

 

엄마는 앞으로도 남편이 출장가면 반드시 집에 오라신다.

사실,, 친정에 있으면 편한 것도 있는 반면

혼자의 시간도 없이 이러저러 귀찮은 면들도 꽤 있어 그동안 나는 대체로 우리집에 있는편이었다.

그런데 하필,, 가위 눌리는 것을 보셨으니 부모님의 걱정은 더 하신 듯 하다.

이제부터 혼자서는 낮잠도 자지 말라신다.

 

` 엄마,, 그 놈의 전설의 고향 때문이예요. `

나는 어린아이 투정부리듯 엄마께 툴툴거렸고

나이가 몇인데 고까짓 것 봤다고 꿈을 꾸느냐 엄마는 눈을 흘기셨다.

 

부모님이 보시긴엔... 자식은 영원히 여린 자식일 뿐인가보다.

자식 입장에서 보면 부모님은 언제나 크은 느티나무 같다.

 

감사하고 감사하다.

그리고,, 이렇게 곁에 계셔 주셔서... 행복하다.

잘 해드리고 싶은데,,

참으로 나는 엉성하고 못미더운 부족한 딸년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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